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책과 영상 리뷰

능력있는 지도자 뒤에는 능력있는 조력자가 있다. 본문

경영 경제 (Business Economy)

능력있는 지도자 뒤에는 능력있는 조력자가 있다.

visiontoday 2017. 12. 12. 16:45

능력있는 지도자 뒤에는 능력있는 숨은 공신이 있다.


 

전력에 뒤쳐진 독일은 뛰어난 참모 덕에 승승장구

능력있는 엘리트들이 작전기획, 사령관이 최종결정

업무량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조직이 세분화된다. 당연히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전체를 관리해야만 하는 기업에서 그렇게 되기를 원할 뿐이지 실제로는 조직이 커지고 세분화되면 그만큼 비효율성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업무를 나누면 과부하가 사라져서 일이 신속하게 처리될 것 같지만 정작 결재나 협의단계가 늘어나면서 이전보다 의사 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어처구니 얺지만 중요한 사안이 최고책임자까지 보고가 늦어지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있다.

 

또한 조직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부서 간에 이기적인 장벽도 만들어지게 되어 어떻게든 간섭하려도 들다가도 문제가 벌어지면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행태가 흔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언론에서 자주 보도하다 보니 한국의 정부 부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1941년 독일과 소련 전쟁당시 히틀러는 그의 주변에 있던 브라우히치 육군 총사령과과 힐더 참모총장을 해임하고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여 독일 특유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파괴되었다이는 독일의 패망을 불러온 이유중 하나로 꼽힌다그리고 최근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보면 민간의 참여가 두드러진 사실을 알수 있다 미국은 소련과의 피 말리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 NASA를 만들어 결국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냉전과 긴장과 맞물려 모든 길이 NASA로 통하던 시대가 열리다 보니 의사 결정은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일 정도로 신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 NASA는 인간을 달에 보낸 이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NASA 내부에서는 결정을 하나 내리는 데 수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관료화가 극심하게 진행된 늙은 조직으로 바뀌었다이 때 나온 해결책이 상업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분야는 민간이 담당하고 장기간 시간이 소요되는 과학분야는 NASA가 담당하기도 했다.

 

소니는 비대해진 조직과 부서 이기주의로 몰락했다.

그런데 합리적일 것 같은 미간 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전자산업계의 거장이었던 소니가 몰락하게 된 이유를 보면, 비대해진 조직과 부서 이기주의, 그리고 이에 따른 늦은 의사 결정을 꼽을 수 있다. 시대를 이끈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었던 소니가 무기력한 조직으로 바뀌는 데 불과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한 CEO라도 일일이 모든 부분에 관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업이 비대해져서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그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참모 시스템이다. 이들은 기업 전반에 발생하는 현황이나 문제점을 곧바로 취합하고 CEO에게 대안을 제시해 의사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많은 기업들이 비서실, 기조실 등 다양한 이름으로 운영하는 참모 시스템은 그 기원을 군에서 찾을 수 있다. 모사나 책사처럼 오래전에도 이런 역할을 수행하던 이들은 있었지만 현대식 기관으로서 참모본부는 독일군 초대 참모총장으로 일컬어지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에 의해 생겨났다.

 

이후 독일군 특유의 시스템으로 발전을 거듭한 참모본부는 다른 나라의 모방이나 시기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였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에손 곤혹을 치르며 간신히 승리한 프랑스가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을 옥죄었을 때 독일군 참모본보의 해체도 포함시켯을 정도였다. 그러나 독일은 병무국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이 조직을 유지했다.

 

그정 도로 독일의 참모본부는 뛰어났다.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교육과 경쟁을 거쳐 실력으로만 선발한 엘리트들이 근무했다. 이들은 예하부대의 지휘관에 비해 계습이 낮지만 작전을 기획하는 권한은 오히려 컸다. 전략이 뒤졌던 독일군이 전시에 효율적으로 가동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이와 관련이 많다.

 

야전, 정책 부서간의 견제와 균형

참모본부의 권한과 역할은 상당하지만 이들은 오로지 최고 결정권자의 판단을 돕는 일만 담당했다.. , 각종 정보를 취합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지 최종적인 판단은 사령관의 몫이었다. 당연히 일선 부대에 대해서 간섭하거나 관여할 수 없었다. 야전부대와 정책 부서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군을 효율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은 이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패배했다. 1941년 모스크바 전투의 패배를 빌미로 히틀러가 군부를 대숙청하고 직접 독일 육군 최고 사령관에 올랐던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국가원수는 군 통수권자이지만 히틀러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싶어했다. 이때부터 참모본부의 정책 조언의 기능은 사라지고 히틀러의 명령만 출납하는 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어 버렸다또한 히틀러에게 아부하는 이들이 참모본보 내 여러 요직을 차지하고 월권을 행사하면서 예하 부대의 지휘 계통에도 문제가 생겼다.

1944년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률했을 때 독일 기갑부대의 출동이 지연되었던 사건은 그런 곯아버린 모순이 표출된 사례다. 어처구니없게도 주요 기갑부대의 지휘권을 히틀러가 직접 행사하다 보니 방어를 담당한 지휘관들은 옆에 있는 멀쩡한 전차를 그냥 지켜만 봐야했던 것이다. 이때 조언 기능이 사라진 참모본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롬멜(Erwin Rommel)처럼 비선을 통해 직접 히틀러와 연결하려는 행태까지 나오면서 지휘계통이 무력화되고 이런 상황에서 이기는 것을 기대한 다는 것은 무리였다.

 

치열한 것으로 따진다면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최초로 참보본부를 만들고 주ㅕㄴ국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한 독일 의 모습은 조직을 관리하느 이의 입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가 될 것이다.

 

(출처: 이코노미조선)

 

 

 

Comments